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청야 전술 (문단 편집) == 초토화 전술 == 청야 전술을 꼭 방어자만 쓰는 게 아니다. 영어로는 초토화와 동의어며 이는 공격자가 공격 전술로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고대 시대부터 있던 [[약탈]], [[습격]]이나 소규모 침공을 지속하면서 침공 지역을 공격군이 일부러 황폐화하는 게 초토화 전술의 시작이었다. 일단 이런 식의 침공이 지속되면 해당 지역의 경제력이 개판이 되버리므로 변경 지역부터 조금씩 방어가 불가능해진다. [[동로마 제국]]의 [[테마 제도]]가 이런 경우를 막아내는 데에 일정 수준의 효과를 발휘했으나 악영향을 완전히 막지는 못할 정도로 초토화 전술은 효과적이었다. 이미 점령한 지역인데 멸망한 세력이 다시 부활 못하게 하려고 지금은 자신의 영토가 된 지역에 초토화를 수행하는 경우도 있다. [[제3차 포에니 전쟁]] 이후 로마가 [[고대 카르타고]]의 토양에 소금을 뿌려 다시 못 일어나도록 멸망시키려 한 사례가 알려져 있다. 다만, 이에 대해서는 정작 로마가 명확하게 소금을 뿌렸다는 기록은 없다. 오히려 멸망시킨 상대의 땅에 소금을 뿌리는 기록이 나오는 것은 구약성경 같은 중동 쪽 기록이다. 예를 들면 아비멜렉이 세겜 사람들을 멸망시킨 뒤 그 성읍에 소금을 뿌린 일(사사기 9장 45절). 대(對)[[레지스탕스]] 전술로 공격자들이 쓰기도 한다. 레지스탕스는 전적으로 민간의 보급에 의존하기 때문에, 이 경우 후방이 된 적지의 레지스탕스가 말라죽는다. 이와 관련된 유명한 비유로 [[마오쩌둥]]이 민간인을 물, 게릴라를 물고기에 각각 비유한 예시가 있다. 덤으로 레지스탕스가 본인들의 생존을 위해서 주변 지역을 약탈하게 되므로 현지 주민과 레지스탕스간의 관계가 최악으로 달려나가게 된다. 그래서 아군의 보급이 충분하면 레지스탕스를 제거하는 용도로 초토화 전술을 쓸 수 있다. 이 작전이 성공한 경우가 [[대한제국]] 말기 [[일본군]]이 호남 지방의 [[의병]]을 몰살시킨 [[남한 대토벌 작전]]과 [[청산리 대첩]] 이후 [[간도참변]]. 두 작전의 결과로 의병과 만주 지역의 [[독립군(한국)|독립군]]들은 커다란 피해를 입고 사실상 소멸하거나, 시베리아 등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야만 했다.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의 '남부군' 소탕작전에서 국군도 대 빨치산 전술로 현지 민간인 소개 및 봉쇄 이후 지속적으로 공군과 포병을 이용한 타격 및 토벌군 투입으로 꽤나 크게 성과를 낸 적이 있다. 이후의 [[베트남 전쟁]] 당시에도 잘 써먹었다. 이때는 민사작전을 포함한 대민지원 활동을 통해 그 형태를 한 단계 더 끌어올렸고, 이는 혁혁한 전과를 알게 모르게 뒤에서 지원하는 데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 이때 이후 한국군은 각지에 평화유지군 파병을 가면서 이 때에 배운 노하우들을 화려하게 사용했다. 여기에서 확대된 것이 [[총력전]] 상황에서 공격자가 방어자의 전쟁 수행 능력과 의지를 꺾기 위해 산업, 경제 시설들을 철저하게 파괴하는 것이다. [[RTS]]에서 적 진영에 들어오면 제일 중요한 것이 [[일꾼]]을 죽이고, 주요 테크 건물을 개발살내는 것과 비슷하다. 근대 이전에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없지 않았지만 공식적으로 이런 전술을 처음 사용한 것은 미국 [[남북전쟁]] 당시 [[윌리엄 테쿰세 셔먼]]이 [[셔먼의 바다로의 행진]]으로 남부연맹의 주요 도시 및 산업 시설을 초토화시킨 것으로 꼽는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이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커티스 르메이]]의 중(重)[[폭격기]]를 이용한 [[전략 폭격]]으로도 발전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